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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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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내용

    솔로몬을 대적하는 이방인 하닷과 르손입니다.

    하나님은 하닷과 르손을 솔로몬의 대적으로 일으키십니다. 하닷은 에돔 족속으로 왕의 자손입니다. 다윗이 에돔과 전쟁 중이었을 때 하닷은 이집트로 도망하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으로 망명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하닷의 망명을 기쁘게 받아주고 애굽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제와 결혼을 시킴으로 인해 에돔과 이집트는 동맹을 맺게 됩니다.


    하닷은 다윗과 군사령관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게릴라 전을 펼치면서 솔로몬의 일평생에 환난을 끼칩니다.르손이 엘리아다의 아들로 솔로몬의 대적이 됩니다(23절). 그는  소바왕 하닷에셀의 부하로 있다가 다윗과의 전젱애서 다메석으로 도망쳐 수리아의 왕이 되어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솔로몬의 대적자들인 하닷과 르손의 지리적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면 솔로몬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에돔 사람 하닷은 이스라엘의 남쪽에서, 수리아의 왕 르손이 위치한 위치는 이스라엘의 북쪽에서 중간에 위치한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솔로몬의 일평생에 괴롬을 주는 대적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에돔 사람 하닷과 수리아의 왕 르손이 솔로몬의 진정한 대적자가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진정한 대적자는 바로 하닷과 르손 뒤에 게신 하나님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악해을 저지르자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 흔히 세상이 말하는 가장 쉬운 방법, 가장 안전한 방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참된 안식이자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내 삶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형들에 의해 팔려나간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주관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결과 요셉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요셉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요셉과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세상이 가치관과 죄와 타협하며 살아간다면 하닷과 르손과 같은 대적들이 일어나 우리의 영혼을 조금씩 갈아먹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삶, 죄를 깨달을 땐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이십니다.

    Joshua
    조회수82
    2023-10-07
  • 본문내용


    호주는 지금 라니냐 현상으로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호주 동부 지역 곳곳에서는 큰 홍수가 나고, 인명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문득 군대에 있었던 경험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해군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군함을 탁 바다를 떠돌며 해상을 지키는 해군으로 군 생활을 하던 중, 서해 바다에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제가 탔던 군함은 이지스함이나 구축함이 아닌 수색을 위한 작은 군함이기에 거센 풍랑과 미쳐 날뛰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해군 기지가 있는 섬으로 피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군함을 방파제로 둘러쌓여 있는 항국에 꽁꽁 결박하여 고정시켜 놓고 주변을 돌아봤더니 작은 어선들은 서로 서로를 묶어 놓은채 항구에 고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큰 배들은 수심이 깊은 저 멀리 바다위에서 정박한 채 바다 속 깊이 닻줄을 내려놓고 거센 파도에 몸을 맡긴채 위아래로 요동치듯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저 큰배들은 왜 항구로 피신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육지에 배를 고정하고, 서로 서로 줄로 묶어놓었던 작은 배들은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히 이곳저곳 부딪혀 파손이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멀리 깊은 바다 속에 닻줄을 내리고 높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던 큰 배들은 아무런 손상이 없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제 안에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죄의 유혹이라는 거센 바람과 세상의 가치관, 나의 자아와 같은 파도들이 날 뛰에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마음 깊숙이 그 중심에 들어가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태풍과 같은 극심한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 중심으로 들어가 닻줄을 내린다면 나의 영혼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거센 풍랑이 나를 흔들려고 하지만 하나님 마음 깊숙이 들어가 닻을 내리고 나의 자신을 맡긴다면 내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평강 가운데 항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100% 맡겨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고 사단은 그리스도인된 우리를 뿌리채 뽑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거센 풍랑으로 흔들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의 닻줄을 하나님께 내린다면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설프게 세상과 하나님 경계선에 자신을 묶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깨지고, 부서지고 뒤집어지는 등 좌절과 상처, 얼룩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깊숙이 들어 닻줄을 내리고 모든 것을 맡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늘 하나님 안에 깊숙이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결론 내리기를 "여호와는 나의 산성, 요새, 피난처"가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안정감은 지금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의 산성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십니다.

     

    주 나를 광야로 이끄실 때

    기쁨으로 나아 가리라

    신실하신 주를 신뢰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나는 두렵지 않네

    주 나와 항상 함께하시네


    주는 나의 모든 필요

    주가 나의 푸른 초장 되시네

    주님 안에 나 거하리

    그곳이 내가 숨 쉬는 곳


    Joshua
    조회수873
    2022-10-27
  • 본문내용

     

    자기가 ‘주님’ 이라고 부르는 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겸손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을 권리가 없다. 언젠가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여기서 일부 독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은 반론 하나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율법을 지키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우리의 의를 위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계명들을 지킬 필요는 없다.  오로지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지난 50년 동안 복음주의의 메시지를 약화시키고, 교회의 도덕적 수준을 끌어내렸다. 덕분에 이제 교회의 도덕적 수준과 세상의 그것은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으로, 믿음으로부터 순종을 분리하는 것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분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전의 양면이 서로 붙어서 하나가 되어 있을 때에만 정상적인 돈으로 간주된다. 이 두 면을 서로 분리하면 동전은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믿음이 전부가 되어버렸고, 순종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신앙인들은 도덕적으로 약해졌고, 영적으로 맹목이 되었으며,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신약의 기독교에서 멀어지고 있다.


    영적 진리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하기 전에는 그 진리를 알 수 없다고 우리의 주님이 아주 분명히 밝히셨다. 그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라고 말씀하셨다. 의지와 행함(적어도 ‘행하겠다는 의지’)이 먼저 있어야 그 다음에 앎이 따라온다. 진리는 엄격한 선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풍성함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전에 먼저 순종을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진해서 하는 순종’이 없다면 ‘구원을 주는 믿음’은 불가능하다. 순종 없는 믿음만을 갖겠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Joshua
    조회수1244
    2022-06-25
  • 본문내용

    오늘은 사모와 함께 오래간만에 같이 쇼핑을 했습니다. 쇼핑을 한 이유는 매달 한번씩 시티 안에 있는 홈리스를 위한 선물 팩을 준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선물팩을 구매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00여년 전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잘 갖춰진 상류층의 집안이 아닌 가장 낮은 자리 즉 흙수저의 집안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멸시받는 세리의 친구로 또는 율법에 의해 부정하고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 나병 환자들 그외에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친구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변화가 되었고 회복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리 마태는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여종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삭개오, 실로암 못에 앉아 있는 38년된 병자 등 예수님을 만나 회복된 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 그리고 멸시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처럼 이 땅에 소외된 자들,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예수님의 마음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흥하면 교회의 숫자적인 부흥으로 여기고, 또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부흥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을 비추어 볼때에 부흥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드는 가운데 홈리스 형제, 자매들을 위한 작은 선물 꾸러미들을 구매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의무적으로 홈리스 섬김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섬길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발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지길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개척교회로써 작은 선물 꾸러미를 나눠주며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나누지만, 언젠가는 다함께 모여서 BBQ를 하며 예배 드리는 그날이 오길 믿음의 눈으로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Joshua
    조회수1420
    2022-05-06
  • 본문내용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장 12절)


    YWAM(Youth With A Mission: 예수전도단)의 영적인 리더 중 딘 셔먼 이란 분이 계십니다. YWAM 선교단체의 1세대로 영적전쟁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셨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 전쟁"이란 책을 저술하기도 한 분이십니다.


    한번은 딘 셔먼 할아버지께서 "영적 전쟁" 강의를 하시고 난 후 마지막에 단 한 문장으로 영적 전쟁을 정리해주셨습니다. 그 문장은 "삶과 싸우지 않는 것이 영적 전쟁이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영적 전쟁"이란 책을 보면 영적 전쟁은 어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영적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미다로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싫든 좋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전쟁 한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단의 공격과 화살에 노출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살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개인의 삶의 현장속에서 이루어지고, 신앙 공동체(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가운데 확장이 됩니다. 이를 두려워하는 사단은 끊임없이 신앙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구성원 한 사람, 한사람을 공격합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의 생각 가운데서 활동을 합니다. 그 이유는 사단은 영적인 존재이고,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인 사단은 사람들의 생각 가운데 끊임없이 부정적이고 악한 생각을 그럴듯 하게 심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유 의지로 악한 일들을 행하도록 만듭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생각이라는 가장 가까운데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내 안에 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때에 반대 정신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미움이 들어올 때에 더더욱 사랑하기를, 정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올 때에 용서하며 축복하며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막기 위해 죽음을 준비했지만, 예수님은 이에 맞서지 않으시고 반대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반대 정신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항상 작은 일상 속에서도 실질적인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는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Joshua
    조회수1464
    2022-01-22
  • 본문내용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창 13:5,6)


    서로 재산이 많아져서 아브람과 롯이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아브람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아브람의 넉넉한 성품과 권리를 포기하는 모습이다. 삼촌으로서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조카에게 양보하며 먼저 기회를 주는 넉넉한 

    성품은 성부의 성품이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단 지역을 택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것은 ‘롯이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죄가 가득한 땅이지만, 롯의 눈에는 물이 넉넉한 아름다운 땅으로 보였다. 그 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달랐다.


    우리는 어떤 시선을 선택해야 하는가? 롯이 아브람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만큼의 땅을 주시며,또 종과 횡으로 다니는 만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약속을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셨을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먹음직한, 보암직한, 탐스러운 것을 선택하는 롯의 시선을 가질 것인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결정할 것인가?


    우리에게 롯의 시선이 남아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기다리실 것이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결정하는 모든 요소들이 롯의 시선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를 신뢰하는 것들, 내 생각과 경험과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롯의 요소이다(게으름이나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등도 롯의 요소일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이런 요소들을 제거할 때 아브람을 찾아오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것처럼 우리에게 있는 롯의 요소를 떠나보내라! 내 안에 있는 롯의 요소를 제거하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겸손하신 예수님을 볼 때 우리 안에 있는 교만한 롯의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살 때 우리 안에 있는 롯의 요소가 제거된다 (출처: 갓피플)

    Joshua
    조회수1433
    2021-12-18
  • 본문내용

    이사야 43장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선택된 백성의 허물을 도말하고 기억하시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이사야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읽었지만 새롭게 다가온 말씀에 눈길을 멈췄다.

     

    "하나님 스스로를 위해서라고?"

     

    꼬리에 꼬리가 물들이 따라오는 생각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우상숭배하며 죄를 범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기로 아예 작정하고 죄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라고 용서를 선포하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20여년 넘게 사역자의 길을 걸으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중 같이 팀을 이루며 함께 사역을 했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예상치도 못하게 뒷통수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믿고 신뢰했던 사람을 사역자로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베풀고, 사역의 자리를 물려줬을 때에 예상치 못하게 배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않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많은 시간들을 놓고 씨름을 하기도 하였다.

     

    사람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인간이며, 그 중에 한 민족을 택하여 언약을 맺으셨고, 돌보시고 함께하셨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뒷통수를 쎄게 친 것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수십 아니 수백, 수천번 이상...

    하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용서하셨고, 품으셨다. 그 이유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몰려 들어왔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그 자체이기에 그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 안될 정도로,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사랑을 베풀기 원하고 계신다.

    마치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 안달이 난 것처럼,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기를 원하시고, 또 베푸셨다. 그것도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내어주는 사랑을 베푸셨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니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뒷통수를 수 없이 쎄게 맞아도 끊임없이 베푸셨던 하나님처럼 나 역시 그래야 한다.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사랑을 베풀고... 이것이 나의 삶의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내 삶 가운데 도적이든, 실수이든 하나님을 밀어내는 영역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몸부림치며 해결해야한다. 이것이 거룩함으로 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나에겐 이러한 능력이 없다. 난 너무나 연역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성령님께서 내 삶을 붙잡아 주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안에 있다. 난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믿음의 싸움을 걸어갈 때에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는다.


    Joshua
    조회수1380
    2021-12-01
  • 본문내용

    상처입은 치유자 삭개오


    삭개오는 여리고라는 대도시의 세리장이다. 근동지역의 3대 세무소의 하나인 여리고의 세리장, 오늘 말로 세무소 대표이다.

    그에게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 체격은 왜소했고 키는 일반 성인의 키에 한참 못미치는 작은키였다. IVP 성경배경주석을 보면 삭개오의 키는 150cm 이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명 난쟁이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체적 장애를 입는 사람들을 볼 때에 부모의 죄의 영향이나 그 사람의 죄의 영향으로 심판을 받은 것으로 여겼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삭개오의 신체적 장애는 죄의 심판의 결과였다.


    이런 삭개오의 직업은 세리였다. 유대인들이 문둥병자와 같이 멸시하고 가까이에 가지도 않는 존재, 마치 일제시대때 친일파를 보고 증오하며 멸시했던 것처럼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멸시의 대상이었다.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창녀와 같은 공식적인 죄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유대인 사회 공동체에서 출교당했고, 유대인들과 어떠한 교류도 맺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삭개오는 중죄인으로 찍힘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배격당했던 삭개오는 열심히 일해 큰 부자가 되었고, 그의 능력도 인정받아 결국엔 세리장이라는 높은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마치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돈의 권력을 가지고 위에 서서 떵떵거리며 살고자 했던 것처럼, 삭개오는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의 성공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런 삭개오가 말로만 들었던 예수님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거리로 달려나가 돌무화과 나무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삭개오를 본 것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라고 말씀하셨다.


    “속히 내려오라”


    어느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속히 내려오라”라는 메시지가 과연 높은 나무 위에서 내려 오라는 말로 들리지가 않았다.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 나아가 죽음의 길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삭개오를 구원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외침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삭개오야. 너 거기 있으면 죽을 수 밖에 없어. 그러니 너가 있는 자리에서 속히 내려오라, 너의 힘으로 성공을 이루고자 했던 탐욕의 자리에서 속히 내려와라. 돈을 우상으로 삼고, 돈의 권력에 취해 있는 그 자리에서 속히 내려오라. 너를 멸시하고 능멸했던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보란듯이 잘 살려고 했던 그 자리에서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를 살리기 위해 외치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외침을 들은 삭개오는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셔드렸다.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놓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자면 4배나 값겠다”라고 고백하며 회개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처럼 죄인 취급당하고 무시당하고 있는 다른 세리들을 모아 예수님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헨리 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 라는 책이 생각났다. 내가 받은 상처가 예수님을 만날 때에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는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다. 상처를 내 힘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에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결국엔 죄의 길에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예수 그리스도께 들고 간다면, 예수님은 약함을 강함으로 바꿔주시고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 역시 상처입은 치유자 이셨다.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능멸을 받았고, 치욕적인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분이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공감하시며 치유하고 계신다.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는 상처입은 치유자들이 모이는 신앙공동체가 되길 소원한다. 상처를 내 힘으로 감추고 해결하려고 해서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예수님께 들고 나아가 회복되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원한다. 그래서 회복의 간증을 들고 상처입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길 소원한다.


    Joshua
    조회수1382
    2021-11-14
  • 본문내용

    사사기 6장을 보면 기드온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을 하던 중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사사로의 사명을 주신다.

    처음 사사로 부르심을 받을 때의 기드온은 자신은 므나셋 중에 극히 약하고 내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여러가지 증표를 요청했고, 하나님은 기드온이 요청한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주셨다.

    결국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한 기드온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300명을 뽑아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기드온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했을 뿐이다.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는 엄청난 승리를 가져왔다. 승리를 경험하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아들 손자들이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니다. 나와 나의 자손들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다.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라고 거부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 기드온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금을 걷고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 오브라에 둔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금으로 만든 에봇을 우상숭배하게 된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겸손하게 "하나님이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했던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도록 에봇을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묻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로 하여금 미디안을 내쫒은 사람이 기드온 자기 자신인 것을 알리고자 상징물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행위가 자신의 집에 올무가 되어 끊임없이 죄를 범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기드온의 첫 시작과 모든 과정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했다.

    그러나 끝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무너졌고, 결국엔 금으로 만든 에봇이라는 우상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들었다.


    11월달이면 우리 교회는 브리즈번 시티로 나가 예배를 드린다.

    우리 교회의 최고의 가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교회.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교회, 성령이 충만한 교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매순간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로 인정받고자 할 때에 모든 것이 그의 다짐은 무너지게 되었다.

    기드온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온 여러 왕들도 첫 시작은 선했지만 끝은 좋지 않게 끝난 왕들이 많이 있다.


    기드온의 삶을 묵상하면서 내 안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되돌아봤다.

    아직도 살아 꿈틀고 있는 옛자아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되돌아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십자가 앞에 다시한번 못박고 철저하게 에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자로 서고자 매일 새벽마다 씨름하고 있다.


    처음과 끝이 동일한 목회자와 성도.

    처음과 끝이 동일한 교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에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인공이시다.


    Joshua
    조회수1322
    2021-10-29
  • 본문내용

     

    대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지하철 4호선 총신대역 입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도중 술에 취한 노숙자 한 분이 힘들게 지하철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다리가 불편한 듯 보였고, 술까지 취해서 위험스럽게 층계를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분 옆에 다가갔을 때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심하게 나오고 있어서, 결국엔 피해서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갈 즈음에 마음 속 깊이 울림이 시작되었다. 그분을 못본척 스쳐 지나갔다는 양심의 가책과, 마음속에서 그 분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무시한채 내려간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마음의 부담감을 안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 분은 아직도 층계를 내려오려면 한참을 걸릴 정도로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땅에 달라붙은 발을 떼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듯이 보였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밑으로 내려가시는건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다. 

    망설이지 않고 그분을 등에 없었고 층계를 내려왔다. 옷은 이미 축축해있었고 참기 힘든 냄새가 났지만 업고 힘들게 층계에 내려와 화장실까지 업고 갔다.

    그곳에 내려놓고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에 마음 속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아. 고맙다. 네가 나를 도왔구나.."


    순간 그분을 처음 봤을 때에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분을 도운 것이 바로 부지중에 행한 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아는 순간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다.



    30여년이 지나고 브리즈번 시티를 걷다가 거리에 초점없이 앉아있는 노숙자를 보게 되었다.

    불현듯 대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시티내에 소외된 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하고 준비하다가, 때가 이르러 시티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섬기는 도시선교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교회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셔서,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

    이 땅에서 오신 예수님의 삶이 바로 교회의 모델이어야 한다.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는 철저하게 낮은 자의 자리로 들어가 섬기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고맙다. 네가 나를 도왔구나"라는 음성을 듣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오늘 이 밤에도 나는 이 일들을 꿈꾸며 기도한다.

    하나님은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를 통해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킬 것이다.



    Joshua
    조회수1310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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