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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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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내용

     

    대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지하철 4호선 총신대역 입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도중 술에 취한 노숙자 한 분이 힘들게 지하철역 입구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다리가 불편한 듯 보였고, 술까지 취해서 위험스럽게 층계를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분 옆에 다가갔을 때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심하게 나오고 있어서, 결국엔 피해서 혼자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갈 즈음에 마음 속 깊이 울림이 시작되었다. 그분을 못본척 스쳐 지나갔다는 양심의 가책과, 마음속에서 그 분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무시한채 내려간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마음의 부담감을 안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 분은 아직도 층계를 내려오려면 한참을 걸릴 정도로 힘들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땅에 달라붙은 발을 떼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듯이 보였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밑으로 내려가시는건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다. 

    망설이지 않고 그분을 등에 없었고 층계를 내려왔다. 옷은 이미 축축해있었고 참기 힘든 냄새가 났지만 업고 힘들게 층계에 내려와 화장실까지 업고 갔다.

    그곳에 내려놓고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에 마음 속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아. 고맙다. 네가 나를 도왔구나.."


    순간 그분을 처음 봤을 때에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분을 도운 것이 바로 부지중에 행한 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아는 순간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다.



    30여년이 지나고 브리즈번 시티를 걷다가 거리에 초점없이 앉아있는 노숙자를 보게 되었다.

    불현듯 대학생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시티내에 소외된 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하고 준비하다가, 때가 이르러 시티에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섬기는 도시선교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교회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셔서,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다.

    이 땅에서 오신 예수님의 삶이 바로 교회의 모델이어야 한다.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는 철저하게 낮은 자의 자리로 들어가 섬기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고맙다. 네가 나를 도왔구나"라는 음성을 듣는 교회가 될 것이다.


    오늘 이 밤에도 나는 이 일들을 꿈꾸며 기도한다.

    하나님은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를 통해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킬 것이다.



    Joshua
    조회수1759
    2021-10-20
  • 본문내용

     

    어느 예배당을 가든 그 중심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다. 눈에 제일 잘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십자가가 보인다. 십자가를 볼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시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 어떠한 불의도 허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는 한없는 은헤와 사랑을 베푸시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 무섭게 징계한다. 하지만 징계로 끝나지 않고 언약의 백성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말씀을 선포하시고, 말씀을 듣고 회복의 길로 들어온 자들을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사랑과 공의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징계하시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겐 한업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정결케 해주신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끊임없이 뒷통수를 치고, 자신이 불리하고 힘들때엔 살려달라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질려서 못본채 할텐데 하나님은 그러하시지 않으셨다. 귾임없이 오래 참으셨고, 계속해서 공의와 사랑을 베푸셨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지 않고 공의만 행하고 계신다면 이 땅엔 아무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연약함,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해준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나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믿음을 준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만난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로마시대때에 죄인을 처형하는 공의의 도구였다. 공의를 상징하는 도구가 아이러니하게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의 도구가 되었다.

    십자가를 볼 때미다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내 안에 죄가 드러나고,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된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개월동안 한 교회에서 어려움을 당하며 힘든 시기를 묵묵히 걸어왔다. 나의 옛 자아는 내 생각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을 할 때마다 나의 뜻이 아닌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바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만 들었다. 이는 내 안에 게신 성령님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새벽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소견대로 말하고 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도록 기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임을 알고 있었다. 난 그냥 하나님 앞에 투정부리며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그리고 또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보실거냐?"고 따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대상 앞에 놓여진 십자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속은 복잡함이 터질 무렵이었다.

    멍하니 십자가를 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몇일을 따지며 기도하는 어리석은 나에게 말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가 교회 중앙에 그것도 눈에 제일 잘보이는 곳에 걸려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교회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있기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이고,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진심으로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교회에 남아있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얘기를 했었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묵상한 이후 힘들지 않았다. 물론 아픔의 잔재는 남아 있었던건 사실이다.

    당시에 나의  눈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나갈 때에 나의 발의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었다.

     

     9월 30일 이후로 그 푯대를 지나가고, 새로운 푯대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 푯대는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의 시작이며, 브리즈번 시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나가면서 기도하는 건 "십자가 중심의 교회,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가 되길 소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고 예배하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신앙 공동체가 되길 기도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사모하고 나오는 주의 백성들이 모이는 공동체이길 소원한다.

     


     

    Joshua
    조회수1668
    2021-10-01
  • 본문내용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18)"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과 말씀이 예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는 철저하게 생명의 근원이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심을 명백하게 밝히시는 것이다.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눅20:17)"

     

    또한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어느 건물 구석에 있는 모퉁이 돌이 아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그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머릿돌이다. 만약 모퉁이의 머릿돌이 빠지면 건물은 무너지게 되고 그 안에는 아무도 거할 수가 없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에 교회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다. 예수님은 교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성령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중심을 잡아주시고 계신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골2:9)

     

    우리는 단지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마디와 힘줄로 연결된 지체일 뿐이다. 우리는 단지 모퉁이의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달라부터 서있는 벽돌 뿐이다. 그런 우리가 무엇인간대 교회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주장을 펼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지체가 머리의 역할을 하겠다고 아우성치고, 일반 벽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구하며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목회자와 장로와 안수집사는 교회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다. 그리고 섬기는 리더쉽을 통해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다. 목회자와 장로와 안수집사는 예수님처럼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한다.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는 철저하게 머리되는 예수 그리스도, 모퉁이의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목회의 계획과 사역의 방향을 정해놓고 예수님께 결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엎드려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 재직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비전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시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소원한다.


    Joshua
    조회수1664
    2021-09-26
  • 본문내용

     

    마태복음 16장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뜸금없이 제지들을 이끌고 빌립보 가이사랴로 가셨다. 당시의 빌립보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도시 답게 화려하고 웅장한 대도시였다. 헤롯 빌립 2세는 빌립보 가이사랴를 헬라 로마 문명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이곳에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고, 세상의 우상들을 모아둔 만신전이 있었다. 만신전은 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이 지역에 살았던 수리아인과 그리스인 외에도 수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와 만신전에서 우상을 향해 절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곳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가셨다. 화려한 대도시와 대도시 사람들에 비해 먼 길을 제자들과 함께 걸오언 예수님의 모습들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수 많은 잡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제자들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곧바로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칭찬을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교회는 믿음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 충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바울은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심령 가운데 뿌리 박히고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알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결국 오늘날의 교회는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 넘쳐야 한다. 그래야 교회는 죽은 모습이 아닌 살아서 역사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말씀과 성령이 충만할 때에 교회의 구성원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타난다. 결론은 하나다. 교회는 말씀과 성령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젠 곧 있으면 브리즈번 시티에 믿음의 공동체가 새롭게 시작된다. 바램이 있다면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과 말씀과 성령으로 세워진 신앙 공동체가 되길 소원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도시 가운데 흘려보내는 교회가 되길 기도한다.

     

     

    Joshua
    조회수1780
    2021-09-21
  • 본문내용

     

    어려서 부터 반복해서 들었던 예화 하나. 

    "사해에 생명체가 하나 없는 죽은 바다가 된 이유는 물을 받아드리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아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흘려보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사해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사해는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 바다로 알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다고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작은 울림처럼 다가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을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아는건 사해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그 어느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오직 사해에만 적응된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건 이들은 다른 생명체와 만나지 못하고, 죽음의 바다 안에 갇혀서 자신이 죽음의 바다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성령이 임하셨다. 성령의 임재는 사도들을 통해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흘러갔고,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룸으로 인해 교회가 생겼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서로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기를 즐거워했다. 서로의 신앙에 만족하며 모이기를 힘썼지만 흩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사울의 등장과 큭 박해가 일어나면서 결국 초대교회 공동체는 유대와 사마라이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복음은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렀고, 오늘날 동북아 작은 반도의 미전도 종족이었던 우리에게까지 구원의 소식이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신앙 공동체는 커져만 갔다. 커져가는 만큼 더욱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했지만 구원받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복음들고 흩어지는 것에 소홀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란 이기적인 집단,  이기적인 성도로 조금씩 자리잡게 되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함께 모여 구원의 기쁨을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을 돌리고 성령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는 것만큼 교회는 흩어지기를 힘써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기쁨, 하늘의 축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내가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목회자는 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성도들과 함께 준행해야 하고,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 역시 늘 말씀 가운데 머물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해 바다가 죽음의 바다인지도 모르고, 안주하며 살고 있는 사해바다의 생물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모이기만 힘쓰는 것은 죽은 바다와 같다. 우리는 죽은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다.

    우리 브리즈번시티순복음교회는 모이기를 힘쓰고, 흩어지는 것에 힘쓰는 균형잡힌 교회가 되길 원한다. 브리즈번 시티 안에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가 되기를 기도한다.

     

    Joshua
    조회수1774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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